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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교회에서 목사님의 설교 말씀.


선교사들이 선교를 갈 때에는 각서를 쓰고 간다고 한다. 어떤 각서고 하니, 만약 납치 등 현지에서 해로운 일을 당한다고 해도 절대 관여하지 않는다. 즉, 협상하지 않는다.

그런 곳에 '선교'를 하러 간다는 것은 '순교'를 각오할 정도를 가져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따라서 이런 각서를 쓰는 것이 당연하다. 오히려 순교야 말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 중 하나 아닌가. 실제로 필리핀에서 반군에게 선교사가 붙잡힌 일이 있었는데, 그(혹은 그녀)를 보낸 기독교단체에서는 어떠한 신경이나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단호하게 협상을 거부한 것이다. 그래서 그 선교사가 어떻게 됐냐 하면, 나중에 결국 필리핀 정부군이 그를 구출했다.


이런 말을 들었다.

그 날 읽은 성경 말씀은 빌립보서 3:10이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그런 것이다.

나는 교회에서 어떠한 직에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주변에서 많이 권유하지만, 듣지도 않는다. 그것이 하나님을 위하기 보다는, 실은 사람 사이의 관계에 관한 것임을 알기 때문에.

'신앙 공동체'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이는 초기 교회에서나 필요한 개념이었다. 왜냐면 그 때는 '박해자'가 있었으니까.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현대민주사회에서는, 사실 '교회'가 필요할 일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공평하시니.

그래서 교회가 선택한 방법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공동체'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 그렇지만 그런 건 개인주의가 뿌리박힌 서구사회에서나 가능하지, 유교문화권인 우리한테는 필요없는 길이다.

그래서 우리가 택한 것은, 바로 '박해자'를 만드는 길이다. 기독교 세계관 자체가 선과 악의 싸움. 기독교는 선. 따라서 박해자는 악. 그러니 우리가 박해자에 맞서 싸워야 한다. 이런 논리. 이것은 철저히 중세적이다. 당시 개인주의화되던 유럽 사회에 대해서 교회가 내세운 방법은 '이교도'라는 인종을 만드는 법. 세계는 기독교도와 이교도로 이분되었다.

이런 방식이 가지는 가장 훌륭한 단점은, 누구나 이 '박해자'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터넷에서 본 어떤 글은, 1000만에 달한다는 기독교 신자를 아프간 피랍이 일어나자 줄이고 줄여서 400만 정도로 쪼그려버린다. 400만은 선. 3600만은 악.

이러한 세계관이 극단적으로 나타난 것이 십자군이다. 예루살렘에 떡하니 눌러앉아있는 더러운 악의 세력들. 선하신 주 예수의 성지. 그곳은 악마의 땅이 아닌 우리의 땅. 신의 이름으로 너희들을 처단하노라.

중세의 향기를 풍기는 우리 기독교는, 열심히 선과 악을 구분하느라 야단이다. 동성애자는 성경에 따르면(그들에게는 신약보다 구약이 더 중요한가보다) 악이다. 현 정권은 악이다. 왜? 친북좌파정권이니까(물론, 솔직히 나도 현 정권은 쓰레기라고 생각하지만). 왜 친북이 악인가? 북한은 기독교를 허용하지 않는다. '박해자'다. 그러니 악이다. 중동은 악의 화신이다. 이단이니까(코란도 한 줄 안 읽어봤나보다). 반면 미국은 선이다. 기독교 국가고, 이슬람 악의 세력을 열심히 쳐부수는 신의 군대이니까.

하지만 십자군은 중세의 클라이막스이자, 중세의 시궁창이기도 했다. 십자군의 이면에 얼마나 권력의 암투와 약탈과 강간과 온갖 추악한 인간의 면이 다 들어있었는지는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한 상인은 '순수한' 소년십자군을 떼거지로 베네치아에 노예로 팔아먹었다지.

십자군의 역할을, 지금은 선교사가 해내고 있다. 실제로 제국주의 시대에 선교사는 식민지의 첫걸음 역할을 했다. 원주민의 뼈속부터 서양화시키는 것이다. '십자군'이 존재하지 않는 시대에 기독교인들은 선교사를 보냄으로서 간접적인 쾌감을 느낀다. 그들이 그곳 원주민을 얼마나 개종시켰는가를 보고 들으며 뿌듯해 한다. 오 주여. 저들을 악으로부터 구원하소서. 저희가 그곳에 가나이다.

그러므로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다. 어쨌든 선교사들은 군대이니, 오히려 죽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도 자기를 위해 죽어가는 사람들을 기뻐하신다. 빌립보서 3장 10절의 말씀이다.

그러나 피랍사태가 일어나고 나서 기뻐하는 기독교인은 하나도 없었다. '좋아'하는 게 아니라, '기뻐'하는 것 말이다. 둘은 엄연히 다르다. 다들 그들이 구차한 목숨 살아 돌아오기를 바랐을 뿐이다. 물론 살아 돌아오면 가장 좋긴 하겠지만, 적어도 그 전제에는 '순교'에의 각오가 있어야 마땅한 것이다. 오히려 냉소를 보낸 것은 네티즌들.



이상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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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이 사람들 왜 이러는가 : 피랍 사건 그리스도인 반응에 대한 생각

    Tracked from 크리스챤 그리고 개발자 2007/09/03 15:40  삭제

    아래글을 쓰면서 내심 나쁜 사람들이 몰려올까 걱정했었는데, 생각보다 점잖은 분들이 오셨네요(아직 소문이 안났나..) ㅎㅎ 언급된 원인은 주로 길거리 포교가 원인인것 같기도 하고.. 교회/기독교인 입장에서 지금 상황이 왜 답답한 건지 다시 생각해봤습니다. 그러니까, 제 입장에서 좀더 객관성을 유지해서 생각해보려는 거죠. 크리스챤 입장에서는 사건의 흐름과 전말은 이렇습니다. - 아프간에 수년간 현지에서 운영해 온 병원, 학교를 지원하고 방문하기 위해 봉..

  2. Subject: 아프간 피랍자들의 언론 플레이

    Tracked from Through-the Migojarad 2007/09/04 00:45  삭제

    '수염깎고 머리 정리할 시간은 없지만, 쇼핑할 시간은 있었다' 파문 어떻게 해서든 최대한 초췌하고 불쌍하게 보이려는 늬들의 노력이 가상하다. 어이구... 저기 저 shoe mart는 확실히 아랍쪽의 신발 쇼핑몰의 쇼핑백으로 보입니다. 두번째 사진의 저 파란색에 노란 무늬 가방은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역시 비슷한 아랍쪽 쇼핑몰 가방으로 보이고요. 아, 참고로 샘물교회측이 인질들 항공료 전액 부담하겠단것도 언론플레이인거 아시죠? 여기를 참고하세요. 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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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리PD 2007/09/03 17: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도 막상 그 상황에 닥치면,,

    자기 자신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 Clockoon 2007/09/03 18:48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 상황에서도 의연할 수 있는 것이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선교 가서 살아 돌아오는 것이 신기하다고 보거든요. 그런 점에서는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2. 미디어몹 2007/09/04 16: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clockoon 회원님의 포스트가 금일 오후 05:00에 미디어몹 헤드라인에 링크될 예정입니다. 익일 다음 헤드라인으로 교체될 경우 각 섹션(시사, 문화, 엔조이라이프, IT과학) 페이지로 옮겨져 링크됩니다.

  3. 님아. 2007/09/04 23: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글 퍼가요~ 제 미니홈피에요~ 제 미니홈피 밝혀야 하나요?;.

    http://www.cyworld.com/ss7852

    여기로 퍼가요 ^ ^. 님 말씀 무지 좋네용 키키

  4. Powring 2007/09/06 20: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새 누가 미쳤다고 순교를 해-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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